지금까지 JLPT에 응시한 건 3번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JLPT를 본 건 2008년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건 2007년의 겨울 즈음이었다. 당시에 나는 무료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유익하게 보내기 위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었다. 학원에도 잠깐 다니기도 하였으나, 결국 그만두고 독학을 하기로 하였다. 일본어 공부는 결국 한자 암기에 달려있는 거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 공부법은 나름 독특했다. 먼저 한자에 읽는 법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였다. 한국어로 배운 한자에, 그 한자를 일본어로 했을 때의 훈독과 음독을 추가하여 외워가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배울 지(知)가 있다고 한다면, 知る(훈독)와 ち(음독)를 추가하여 외워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學나 学같이 같은 한자인데 일본어에서는 약자로 쓰이는 한자가 있을 때에는 따로 암기하였다. 다행히 고등학교 3년 동안 어떤 과목보다 한문에 열을 올렸었고, 이 방법은 나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음으로 일본어를 일본어로 읽지 않았다. 앞에 이야기하였듯, 한자에는 자신이 있었다. 독해를 할 때에 한자가 반절 이상인 일본어를 굳이 일본어로 읽을 필요가 없었다. 특히 독해를 할 때 한자는 한국어로 읽고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문제를 푸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시간 절약에도 매우 도움이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좋은 "일본어" 공부법은 아닌 점이다.


시험은 정말 어려웠다. 시험을 볼 때에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듣기는 얼마나 정신 없게 지나가던지, 등장인물의 변덕스러움이 많이도 원망스러웠다. 준비 중에 선생님께서 1년 안에 1급은 무리이니 2급을 보는 게 낫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시험 중엔 그 말씀 생각이 많이 났고, 너무 단기간에 많은 것을 기대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400점 만점에 333점. 합격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마침 좋은 일도 일어났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 J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학교에서 일본 어학연수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JLPT 1급이 조건이었는데, 나는 그걸 타이밍 좋게 충족한 셈이었다. 도전하였고, 합격하였다. 처음 1급에 도전할 때 이런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본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막연하게 시작한 JLPT공부와 J의 전화 한 통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N1이 아니라 1급이었고, 180점 만점이 아니라 400점 만점이었다.



 그 다음으로 JLPT를 본 건 2013년 대전에서 였다. 이때는 이미 도쿄 어학연수와 오사카 교환학생 경험을 한 이후였다. 처음 봤을 때 만큼 난이도 때문에 긴장하진 않았다. 다만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야 말로 마음이 참 간절하였다. 나름 일본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그 증거로 높은 점수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이 보다 높은 점수란 없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점수였다. 시험 결과 발표일 후에 주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성적을 올리곤 했었는데, 당시에 나름 겸손하겠다고 난생 처음받아보는 점수에 이걸 공유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묻혀졌다. 그래도 (혼자서) 세상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




 그리고 어제(2일) 3번째 JLPT 시험을 보고 왔다. 2번째 시험으로부터 4년만, 첫번째 시험으로부터 9년만이었다. 일본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참 편안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일본어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고, 장소도 내가 다니는 학교 였는데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유학생일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험장에는 '아니 우리 학교에 이런 공간이...?'하면서 들어섰다.


共北에는 가본적이 있었지만, 共東는 처음이었다.


시험장 입구. 들어갔더니 벌써 학생들이 가득했다.


시험 전 시험장에 도는 긴장감은 여느 시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봤던 어학시험과는 다르게 청해(듣기)가 2교시라서 좀 놀랐었다.


시험은 1교시 "언어지식과 독해" 시간, 2교시 "청해" 시간으로 나뉘어 져있었다. 1교시를 다 풀고나니 1시간 정도가 남았었다. 모르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지만, 두 번째 풀어볼 때 2문제 정도 착각한 게 있었기 때문에 답을 고쳤다. 과거 불수능 때 만점을 받은 분이 인터뷰에서 시험은 빨리 풀고 남은 시간동안 친구들한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다고 하였다고 들었다. 난 그정도로 명석하진 않지만, 나름 비슷한 경험을 한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교시 청해 시간에는 등장인물들이 마치 답을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서 놀랐다. 발음도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가? 이제 슬슬 JLPT도 다양한 성우들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IELTS 정도는 아니더라도 실제로는 노인 분들, 아줌마, 아저씨, 가게 용어나 젊은이들 간의 대화 등 알아 듣기 힘든 발음이 얼마나 많은데. 특히 관서 사투리는 꼭 필요하다. 관동에서 생활해본 적도 있는데, 은근히 많다.


때때로 나는 답을 이미 아는데, 등장인물들이 특정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고 돌려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시험은 한 마디로 어렵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시험이 어렵지 않았던 만큼, 시험 외적인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세월의 무상함이다. 비록 지금은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JLPT는 한 때 내가 울고 웃었던 그 시험이다.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여 1급 합격에 그렇게 기뻐했던 꼬꼬마 대학생()은 벌써 일본 생활이 6년 차다. 대학원에 다닌다. 전공도 사회과학이라 어줍잖은 일본어로는 승부조차 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본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고, 주는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교육학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일에 대해 느끼고 있는 어려움도, 후에는 이렇게 되는 걸까 싶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정말 장기적으로 계속 갖고 갈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일 것이다.


같은 유학생으로서 정말 반가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니!


한 편으로는 과거의 나의 모습을 보는 거 같은 반가움도 있었다.


되돌이켜 보면 JLPT 시험에 대한 기억은 긍정으로 일관되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때 나에게 기회를 주었고, 한 때 내 경험과 노력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겐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나는 미래에 또 이 시험을 볼 것이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고 그 용도도 상관 없다. 단지 그때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사실 세 번째 시험은 내가 의도해서 본 것은 아니었다. 모두 B가 추천한 덕분이다. 참 고맙다.


(그리고 2019년에 또 한 번 시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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