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번에 수상작 중에 몇 학번 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교육학과 선배님도 있으시더라구요. 그 분을 이어서 제가 수상을 하게 되었으니, 제 후배 중에도 수상하는 사람이 나오면 얼마나 멋질까...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제가 느꼈던 점을 전달해볼까 하는 마음에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인원이 적은 우리학과 특성때문에 이곳에서 교육학과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박물관의 갤러리에 나의 사진이 전시 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다.

더불어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수상작의 사진을 촬영하여 오기는 했습니다만, 혹시나 직접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수상작 전시회가 박물관에서 2월 말까지 열릴 예정이니 직접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저희 학교 사진 콘테스트는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개최되는데, 그 역사가 벌써 2011년 기준 8회에 달합니다. 다시 말해 꽤 역사가 깊으며, 앞으로도 계속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렇기때문에 미리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무엇보다도 콘테스트의 룰이 중요하겠죠?
제가 출품했던 콘테스트의 조건 중에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8회 콘테스트 기준)

○ 출품내용
학교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대학생활의 다양한 모습들 (인물, 일상, 풍경, 행사 등)

○ 심사기준
예술적 사진보다는 학교 역사자료로서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감점요인
불필요한 이미지 보정의 경우, 기존에 출품된 작품 중 다수 중복된 이미지가 있을 경우

○ 시상내역 : 대상 1명 (상장 및 상금 20만원)

우수상 3명 (상장 및 상금 10만원)

장려상 10명(상장 및 문화상품권) 그 외, 입선 다수 




출품내용과 심사기준에 대해

산업미술학과 학우의 시간과 학교라는 작품. 학교 정문 앞에서 장노출을 주어 아름다운 빛의 궤적을 얻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의 사진만을 출품할 수 있으며, 예술적인 아름다움보다는 그 기록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물론 수상작들 중에는 기록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것들이 몇몇 보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합성은 안된다고 합니다만 디지털이므로 어쩔 수 없는 보정은 허용되는 것 같았고, 합성인데도 불구하고 수상한 작품 한 장이 있어 그 기준을 의심케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저 룰들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가을과 겨울의 풍경을 합성한 의도는 좋았고, 그 결과물도 아름다웠지만 심사기준에 의하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수상해서는 안될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제가 주목한 점은 '기존에 출품된 작품 중 다수 중복된 이미지가 있을 경우'입니다. 학교가 넓긴 하지만 피사체가 한정되어 있기때문에 실제로 수상작들 가운데서도 별 다를 바 없는 사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를 근거하여 앞으로의 경향을 예측을 해본다면, 학교 풍경 사진보다는 축제 같은 행사나 이러한 것들을 즐기는 불특정 다수의 인물 위주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ex)축제에 열광하는 사람들, 시험기간에 도서관 자리를 맡기위해 길게 서있는 군중들 등) 더불어 저희 학교의 농대나 수의대 그리고 의대 캠퍼스 쪽의 수상작은 보기 힘듭니다. 이곳은 풍경까지도 꽤 수상 확률이 높은 촬영지가 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ex)하얀 눈이 내린 의대-백의와 매치시켜서 등)




충남대에서 가장 큰 축제인 백마축전은 한 해에 한 번 뿐이고 매년 프로그램이 바뀌기 때문에 이런 대회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엔 장려상을 수상했는데 사실은 조금 더 기대했었다.





시상내역에 대해
다른 기수의 대회에 얼마의 상금을 주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7회에는 1등이 10만원 이었다고 합니다. 10만원도 아마추어의 사진 한 장에 지불하기에는 적지 않은 액수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번에는 늘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참고로 3등 장려상은 문화상품권 2만원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상금도 기뻤지만, 시상식 날에 박물관 측에서 다과회를 열어주어서 과자와 귤도 많이 먹고 사진을 찍는 다른 학우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이쯤으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콘테스트의 룰이었구요.
그럼 이제 어떤 수상작들이 있었는지 약간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8회 CNU 사진콘테스트 수상작들 

이 작품만 파노라마 였다. 이런식으로 촬영기법에 변화를 주어 개성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8회 대상한 작품. 다시 말해 1등이다. 촬영하신 분과 얘기를 해보았는데 소니의 nex3로 어안렌즈 효과를 주어 촬영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더 푸르고 시원한 느낌이다. 이 작품은 수상의 조건을 만족함과 동시에 위 작품과 마찬가지로 촬영기법의 특이성도 수상에 한몫했으리라 본다. 덧붙이자면 그는 사진동아리 소속이라고 했는데...왠지 분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한 때 인터넷에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함께 찍은 사진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영감을 받은 걸까?

우리 학교에서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수상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즌은 바로 봄과 가을인 것 같다. 그 중 봄을 담은 이 사진은...정말 예쁘다.

 



마지막으로 제가 다음 콘테스트를 위해서 촬영해본 작품을 보여드리고, 이 글을 그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대학 안이 아니기는 하지만, 혹시나해서 남겨본 대학로 사진.

붉은 달이 뜬다 길래 학교 도서관 옥상에 올랐다가, 야속하게도 달이 보이지 않았다. 학교 야경만 담고 물러난 사진. 추운데 조수하느라 고생한 친구들에게 고마웠다.

봄과 가을은 많이봤는데, 눈이 온 학교 모습은 어떨까해서 담아 보았다. 가능하면 아침일찍 나가서 발자국이 없는 깨끗한 설경을 담고 싶었는데, 아침에 구름이 끼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졸업생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교육학과의 전통을 담은 사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런 따뜻한 사진도 앞으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은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아시다시피 저는 올해 교환학생으로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미리 찍어둔 사진으로 밖에 출품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가능하면 이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서 올해의 사진으로 다가올 9회 CNU 사진 콘테스트에서 저희 학과 학우분께서 입상의 기쁨을 누리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이 콘테스트는 충남대를 졸업한, 혹은 충남대에 재학중인 학생들을 위한 다시말해 우리들만을 위한 기회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품해보시고 저희 학교 학생으로서의 권리를 누려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어쩌다보니 제가 사진을 좋아하는 만큼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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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기숙사. 나는 3년 중 2년하고도 한 학기를 기숙사에서 보냈다. 우리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바로 전교 20등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나는 전교 20등 안에 들지 못했다. 영어에는 자신이 있어서 점수에 상관없이 곧 잘 전교 1등을 하곤 했었지만, 수학 점수가 항상 뒤로부터 전교 5등 안팎이어서 총점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시간이 흘러갔다면 지금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여튼 1학년 2학기가 시작될 즈음, 나는 집안 사정으로 인하여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1학년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로 불러내어 조용히 말씀하셨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을테냐?”

 

아마 나의 영어 성적이 아까운 마음이 들으셔서 였을테지만, 나는 그 때를 기억해낼 때마다 아직까지도 그때 느꼈던 신비로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그런 일종의 엘리트 집단에 들어가게 될 수 있다니......

 

 

그때까지 나에게 우리학교 기숙사생은 매우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졌었다. 학기 초부터 그들이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일종의 동료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군산 시내의 유명 학원들에 다니고 있었고, 그곳에서도 일종의 엘리트 반에 속해있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같은 학원에서 알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높은 아이들의 부모님들끼리 커뮤니티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전부터 교류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중학교 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허겁지겁 학원에 다녀서 모자란 연합고사 점수만을 대충 메워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내가 있는 레벨보다는 그 이상의 것으로 보였다. 부럽기도 했지만, 이질감과 동시에 괴리감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들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나와 저들의 차이가 무엇일까? 무엇이 저들을 저런 엘리트로 만든걸까?’ 정답은 간단했다. 기숙사생들만 점심시간에 긴 줄을 서지 않고 밥을 별도의 공간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가끔씩 선생님들이 불러내어 돌아왔을 때 품 한가득 새 문제집을 안고 돌아오는 것도, 정규 수업 시간에 자거나 다른 공부를 해도 그다지 꾸중 듣지 않는 것도 전부 성적때문이었다. 결코 그들이 인간적으로 뛰어난 품성을 지녔거나(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니지만) 남들 모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은 기숙사 밖에 더 많았다. 그들은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탐구, 과학탐구에 우수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특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제껏 자라오며 겪었던 빈번한 이사에 지쳐있었고, 홀로 군산에 남아있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이들과 한 배를 타게 된 것이었다.

 

 

기숙사에서 만나게 된 아이들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달랐다. 학원이나 과외는 기본이고 그때까지 나는 알지도 못했던 인강이라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인터넷 강의의 준말이었는데, 그들은 PDA는 물론 노트북 같은 것을 사들고 와서는 자율학습시간 동안 그것을 보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 중 한명에게 학교에도 같은 과목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계신데 왜 그런 것을 보고 있냐는 질문을 했다. 당연한 대답이었겠지만, 그는 더 잘 가르쳐준다. 알기 쉽다. 수능에 나온다.’ 같은 대답들을 했다. ‘수능에 나온다......’ 그랬다. 우리들이 일요일을 제외하고 아침 640분에 일어나 20분 동안 운동을 하고 720분까지 열람실로 내려가 830분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9시까지 교실에 가서 정규 수업을 받은 뒤 18시에 정규 수업이 끝나면 저녁식사를 하고 19시부터 22시까지 정해진 교실에 가서 특별수업을 받아야 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깨달음 때문에 왜 좋은 대학에 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어째서 이렇게 공부해서까지 이들은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인가?”

 

 

물론 나라고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러한 열망은 기숙사에 들어가 열람실 한구석에 처박혀서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내 사고방식 속에 거미줄처럼 끈끈히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내가 지적인 갈증에 목말라있어서, 대학교에 들어가서 그러한 지식의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의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을 향해있었고 대학 이외의 길을 생각할 여유나 대안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고 그 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소수이기 때문에 알아서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열망은 커져갔지만, 여전히 어째서 그래야하는지에 대한 답은 내릴 수 없었다. 옛말에 세월은 화살과 같다고 했던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대학에 대한 각종 의문을 품고 있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런 나조차도 이젠 대학 3학년생이 되어있었다.

 

 

그 당시 기숙사생이었던 우리들끼리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우등생들끼리 라이벌의식으로 가득해서 서로를 죽도록 미워한다거나 비방한다거나 만년 2등이 1등을 옥상으로 불러내 등을 떠민다던가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본받을 점이 많은 좋은 친구들이었다. 지금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의 대부분은 그때 만난 친구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이켜 보면 우리가 서로의 미래에 대해 질문 했던 것은 너 어디 갈거냐?” 뿐이었던 것 같다. 아주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결국 너는 어디 무슨 과가 목표냐?” 정도였다. 서로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 가에 대해서는 질문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법대에 가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판검사가 되는 것이었고 신방과에 간다고 하면 당연히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는 줄 알았다. 물론 나의 경우도 교육학과에 가게 되면 당연히 교사가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덤으로 예쁜 여교사와의 결혼까지도 꿈꾸었으니 매우 착각이 심한 편에 속했었다. 하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뭔가 이상했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죽도록 노력했는데도 그 결실을 이룬 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더 죽도록 노력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대체 이놈의 경쟁이라는 것은 언제쯤 끝나게 되는 것일까. 지금은 심지어 혹여나 내가 나중에 노인정에 들어가게 될 때도 입정시험이라는 것을 쳐서 명문노인정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봐야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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