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들어 아무 목적 없이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가방에 노트북이네 연구자료네 이것저것 싸서 들고 다닌다.
쉬고 싶을 땐, 한적한 스타벅스나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노트북도 하고 연구자료도 보곤 한다.
대학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밖에서 하면 웬지 개방감 같은 게 있다.

그리고 어쩔 때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커피만 홀짝이며 생각에 빠지곤 한다.
요 포스트에는 그럴 때 생각했던 것도 정리할 겸,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집 근처 쇼핑몰에 있는 도시락집. 한국요리 행사 중이었다. 서로 못간지 오래되서 그런지, 이런 작은 동네에도 이런게 가능한가보다. 최근 공항에서도 한국관련 행사가 있었다는데, 한국관련해서 후쿠오카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나카스카와바타 상점가. 중고 카메라를 보러 갔었다. 문득 내 취미가 사진이었던 게 생각나서 요즘 잘 팔리는 바디와 시세를 보러 갔었다. 요 밑으로 이어지는 나카스카와바타-텐진 사진은 다 같은 날 촬영함!
길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신사. 저 뒤로 꽤 큰 거 같았다. 후쿠오카도 이런 운치가 있구나. 사실 잘 몰랐다. 난 여기 있는 동안 대체 뭘 한거지?!
이름 모를 강. 이게 나카스카와일까? 교토 카모가와와 다르게 강변에 앉을 수 있는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운치 있었다. 처음 본 풍경. 나는 후쿠오카에서 대체 뭘 하고 지낸거지?! 
텐진 크리스마스 마켓. 한창 행사 진행중이었다. 이곳 후쿠오카는 코로나 분위기가 좀 풀려서 그런지, 이제 행사도 무난히 열리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마켓은 뭘 파는 곳일까? 사실 한 번도 못 가봐서 잘 모르겠어...
횡단보도 앞에서 나타난 부산 표시. 상당히 갑작스러웠다. 왜 있는거지?!
텐진 신텐초에 있는, 시계탑. 세상 예쁘다.
케이고 공원. 세상에 텐진 한가운데 이렇게 큰 공원이 있었다. 몰랐어. 여기저기 사람들이 쉬고 있는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이고 좋다. 후쿠오카의 좋은 점은, 도심 내에 이런 쉼터가 큼직큼직하게 잘 마련되어 있다는 점 아닐까? 요기도 그렇고, 오오호리 공원도 그렇고. 아 맞다, 그리고 이 근처를 걷는데, 눈앞에서 차끼리 뺑소니 사고가 있었다(11월 14일 일요일). 흰색 크라운(사고낸 차)이 쥐색 경차를 뒤에서 받아 사고를 내더니, 세상에 인도 전용 도로 펜스를 차로 받아서 치우고, 그쪽으로 도망갔다. 나중에 우연히 도망간 쪽을 지나게 되었는데 도로표지판도 하나 쓰러져 있더라. 정말 눈앞에서 처음 봤다.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사고 당한 차 운전자 분이 괜찮으신 걸 확인하고, 사고낸 차 번호를 외워서 운전자 분께 알려드렸다. 몸에 문제 없으시길...
한밤 중, 후쿠하쿠데아이바시. 정말 예뻤다. 나만 빼고 크리스마스인가벼. 이 근처 벤치에서 아는 동생과 한잔 했다.
후쿠하쿠데아이바시를 멀리서 찍은 사진. 세상에, 그러고보니 벌써 크리스마스라니 시간 정말 빠르게 간다. 작년 크리스마스엔, 한국에서 자가격리 중이었다...
그리고 후배와 찾은 한 야타이(포장마차). 술 참 맛있게 잘 마셨다. 그러나...여기에서 후배가 진탕 취해서 조금 고생했었다ㅠㅜ
그리고 다니기 시작한 헬스장. '난 이러이러한 사람이야! 바뀔 수 없어!'라는 내 고집을 꺾기 위한 첫걸음.


그리고 내가 나에 대해서 생각해본 반성들.
자조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꼭 지켜나가고 싶은 것들.

- 소중한 사람과의 어긋남에 대해서
누구나 장점과 단점은 있다. 굳이 누군가를 미화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사이가 멀어진 다음, '이렇게 맞추면 됐겠구나'라는 후회는 아무 소용 없다.
혹여나 내가 그렇게 맞췄더라도, 어긋났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소중하면 소중할수록, 무언가 끈이 이어져있을 수록,
그 순간의 선택에 대해 매우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것이 무언가를 검증하는 질문이나 반응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이러한 점에 있어 너무너무 어리고 미숙했던 것 같다.
마음은 급하고, 뭐든지 빠른 결론을 내려고 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만약에, 정말 만약에 다시 기회가 오면, 그땐 내가 크게 바뀌어 있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소중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서
나는 어쩌면 후쿠오카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상심이 커서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후쿠오카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에게 한명씩 인사 겸 잡담을 나누러 돌아다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잘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했을 때였다.
문득,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최악인 점은, 그 사람의 삶의 재미와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하고 이러한 평가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제 (11월 15일), 대학원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그럼 니가 원하는 삶은 뭔데?"라고 되물어왔다.
세상에, 대답을 못하겠더라. 나 조차 내가 어떻게 살길 바라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타인의 삶을 내 잣대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타인에게, 그러한 삶의 형태에 대한 나의 불안감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테니 오히려 불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신뢰하고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은 어땠을까? 그런 사람일 수록, 나의 말을 귀담아 듣고,
나의 이러한 말이 불편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고 있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로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 내 고집을 꺾기 위한 나의 노력에 대해서
헬스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가 나에게 운동을 권해도, '이 정도 몸매면...', '너무 바빠서...'라며,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이 고집부터 꺾기로 했다.
나를 일부러 고통스럽게 만들고,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 대한 희열을, 나 자신에게 선물 해보기로 했다.
물론 연구 시간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신체능력을 높임으로써, 연구 시간에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타인의 희노애락에 잘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다망함(多忙함)과 나이를 먼저 운운하는 고집불통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시련을 주고 싶다.
그래서 나 자신을 한번 무너뜨려보고 싶다.
이는 무언가를 다시 쌓아나갈 기회가될 것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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