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왔다.

매년 몇 번 씩은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지만, 아직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면 마음이 들뜬다.




학교 안에는 여성의 나체상이 많은데,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너무나 추워 보여서 안쓰럽다.


눈까지 오니 더 처량해보인다.





최근 일본에서의 생활과 그 이후의 진로를 계획하기 위해 일본 유학생들의 블로그를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

한 사람의 일대기도 짧지 않은데, 다 읽고 나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찾고 있다.


아마도 블로그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건 2009년에 도쿄 유학을 계획했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은 공부가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에 필요한 지식이 있더라도 이것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블로그는 이 조건에 부합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은 매뉴얼 같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실제 어떤 사람의 일상사라는 점에서 재미와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당시에 일본 생활에 앞서 생계유지를 위하여 아르바이트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고 있었고, 특히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어떤 아르바이트가 가능한지 그 사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북오프 아르바이트였고, 북오프 아르바이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결국 찾아낸 것이 Gusan님의 블로그이다. 내 고향 군산(Gunsan)과도 비슷한 스펠링이라 왠지 친숙했던 닉네임의 이 분은 교환학생 직후에 워킹 홀리데이를 시작하여 북오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북오프에 대한 경험담을 알기 쉽게 사진을 곁들어서-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었을텐데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이를 보고 북오프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져갔으며, 결국엔 이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덕분에 나름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새벽에 우연히 여느때와 같이 블로그를 찾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이분의 블로그를 발견하곤 왠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분의 예전 글을 뒤지다가 이러한 사정을 떠올려 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에 의도치는 않으셨을테지만 큰 도움을 주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여 블로그의 안부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왔다.



이 분의 블로그를 본 덕분에 당시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어떤 각오로 1년을 보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의 유학에 대해 그때의 그 초심을 갖고, 그때만큼 노력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이 분에게 한 번 더 빚을 진 것 같다.

오사카대학 유학 중 수업에서 다루어졌던 아사히신문의 600자 정도로 연재 되는 짧은 수필 같은 것이다.

오늘 성환이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성환이가 틈틈히 번역해 놓은 것이 있길래 나도 따라할지 말지 고민중이다.


나도 한 번 해볼까? 

그런데 하루에 하기로 한 것이 너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날 하기로 해볼까...?


일본어도 잊어버리고 있겠다...나쁘진 않을 거 같기도한데...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봐 두렵다.



성환이 서류 관련 일이 끝나고, 궁동에 내려가 맥주와 치킨을 사와 간단하게 방에서 한 잔 하게 되었다.

복잡한 서류 준비와 제출이 끝났고, 추천자 2명 중 단 한 명만이 서발되는 전액지원(학비+생활비+도일비용)지급자가 성환이로 결정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져온 터라 축하 할 일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아직 합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기뻐하는 것은 이르지만, 내가 볼때 합격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오사카 유학으로 일본어도 높은 수준에 와 있고, 성격이 원만하며 끈기도 있고 체력도 좋다. 


또, 오타루 상과대학으로서는 거의 끊기지 않고 우리 학교 측으로 교학학생을 보내고 있으며, 외국 자매대학 중 2번째로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학교 교류 역사도 꽤 된 축에 속한다. 10여 년 전, 우리 학교 출신으로 오타루 상과대학에서 국비유학생 과정을 거쳐 현재 큐슈산업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해당 대학에게 성환이 만큼 적합하면서 상징성이 있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치킨이 너무 맛이 없었다.

다시는 사먹지 말아야지. 다송치킨...




학교에서 열리는 교육학 관련 포럼은 대부분 출석하려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못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간도 1시간 정도 맞고, 내용도 평소 알고 싶었던 것이라 이것만큼은 꼭 듣고 싶었다.

게다가 마침 평소 수업스타일을 매우 좋아하는 김두정 교수님께서 주제 발표를 맡으셔서, 걸핏하면 내용이 어렵고 다루기 모호한 주제일 수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분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한교원 강좌가 끝나고, 딱히 정해진 일정이 없는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도서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후배에게 부탁받은 책을 후배의 책상에 두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무심코 주변을 둘러본 나는 생각보다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많음에 놀랐다.


1월 14일, 모든 계절학기가 끝난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학생들은 학교에 남아 있을 이유가 거의 없는, 겨울방학이 한창인 평범한 화요일이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제각각 자신의 공부를 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의욕만 앞섰는지 자꾸만 고개가 떨어지거나 휴대폰의 연락을 확인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숨 한 번 쉬지 않고 책을 뚫어져라 보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방학, 게다가 학기가 끝난지 한참이 지난 한 겨울에 이렇게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을 보면 자신도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양한 경험 쌓을 수 있는 방학의 자유까지 빼앗아간 사회의 차디찬 겨울 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오타루 상과대학은 예전에 일본어 스터디를 함께 했던 타키 선생님께서 근무하고 계신 곳이다.

우연히 경상대 앞을 지나다 오타루 상과대학에서 선발하는 문부성 장학생에 대한 플래카드를 보았다.

대학을 고를 순 없지만, 이렇게 쉽게 가능 방법도 있다니...약간 놀랐다.


그때 마침 경상대에 재학중인 성환이가 생각이 났다. 

성환이는 경상대 졸업에 이제 졸업을 하기도 하고 공부를 더하든 취업을 하든 이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해주고자 마음 먹었다.


추천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기 위해서 경상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세한 정보를 보았는데...

이 조건도 좋은 조건이지만, 경상대학과 나고야 대학이 맺은 교환학생의 조건도 대단했다.

경상대에선 매년 2명까지 나고야 대학에 보낼 수 있는데, 

그 중 한 명을 JASSO 장학생으로 추천해주는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받고 싶었던 그 장학금을...2명 중 한 명이 추천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그것도 내가 그렇게 가고자 노력했던 제국대학 교환학생까지 갈 수 있다니 말 다했다.

가관인 것은 2명 선발인데 추가모집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한 편으론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군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에 내가 경험해 왔던 것들을 생각하면 저런 것들 쯤이야 이제와선 덤덤하다.


그것보다도 성환이에게 추천을 하였는데,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내 생각에도 성환이에게 딱 알맞다. 한국문화원에 합격한다면 인턴 뒤에 진학할 수 있어 아귀가 맞고, 대학원 진학후 취업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유도 얻을 수 있다. 또한 그 동안의 생활비를 넉넉하게 지급받을 수 있으니 이것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 무엇보다도 한국어, 일어, 영어를 아우르는 언어 능력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온 성환이는 선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한 몫한다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1급을 취득하여 도쿄 유학 장학생 선발에 도움이 되는 등 유용하게 쓰인 JLPT 1급.

시험은 군산이 아닌 익산에서 시행되었고 1년에 한 번뿐이었으며 

다른 급수를 거치지 않고 한 번에 1급을 도전한 것이기 때문에 치루기 전에 많은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덜컥 붙어버려서 기쁨과 놀라움이 반반이었다.

그 당시 점수는 333점이었는데, 이 점수를 마음에 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3년 7월 7일, 5년 만에 다시 JLPT 시험을 보게 되었다.

취업준비에 앞서 자격증을 갱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급수의 이름이 N1, N2, N3과 같은 방식으로 바뀌고, 난이도의 조절이 있었지만 예전 시험 내용을 일일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딱히 체감을 할 수는 없었다.


오사카 대학 유학이 도움이 되었는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 이후로 만점을 받아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막상 JLPT 결과를 취업에 쓰려고보니,
다른 진로로 결정되어서 JLPT 만점이 얼마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만점 받으면 누가 성적표에 금테 둘러 준다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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